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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소근소근

경인교대 08 논술 기출 문제





 

<논제>(가)-(다)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는 핵심 개념을 선정하여 글의 논지를 요약하고 이러한 견해가 학문을 탐구하는 자세에 시사하는 바를 논하시오


(가) 공학자 헨리 페트로스키나 신경생물학자 아서 유윌러 같은 사람들은 노는 기술이 실종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전문성이 어렸을 적 탁상시계나 손목시계를 분해해 보고, 낡은 자전거와 라디오를 수리하고, 그냥 재미로 뭔가를 만들어 보았던 경험들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아이들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고장 나면 즉각 다른 것으로 바꿔 버린다.

 놀이는 상징화되기 이전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직관,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창조적 통찰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규칙에 얽매인 일에서 원하는 통찰이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관습적인 생각이나 행동, 지식을 통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 때 놀이는 이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하는 재미있고 안전한 수단이 되면, 압박감을 주지 않는 학습과 공포를 유발하지 않는 탐험 방식이 될 수 있다.


(나)19세기 후반 러시아의 한 젊은이는 사회과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다른 공부를 하는 것은 ‘추상적’사고의 연습이 된다. 근본적인 의문을 파고드는 방법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선택한 경제학 공부보다 다른 분야에 더 강하게 끌리는 때가 종종 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로마법, 형법, 러시아법과 농민법의 역사, 인종학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추상적으로 사고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청년은 누구인가? 이 젊은 사회과학도는 바로 바실리 칸딘스키였다. 그는 비구상적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추상적 개념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화가의 길을 선택하여 그림을 통해 지각과 표상의 개념을 재정립하고자 하였다. 칸딘스키는 예술 작품과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다른 세계들 간에 부딪치는 천둥 같은 충돌을 통해 신세계를 창조하며 이 신세계가 바로 작품이다. 누구도 새 가지가 돋아난 것을 두고 나무줄기에 불필요한 잉여가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무줄기가 가지를 가능하게 했을 뿐이다.”


(다) 깊이 들여다보면 과학 활동과 예술 활동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니체는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의 출발점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레싱은 진리 그 자체보다도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더 큰 만족감을 얻었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렇게 해서 놀랍게도 과학의 일급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지식인들은 노발대발 하게 되었다.” 왜 노발대발하는가? 니체에 따르면 과학의 목적이 진리라는 생각은 지식인의 ‘고상한 형이상학적 환영’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레싱의 말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 말이 과학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연구에 빠져드는 것은 연구가 재미있어서이지 진리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연구가 왜 재미있을까? 연구의 이면에는 모험에서 나타날 법한 함정이나, 예측 불허의 것, 놀라운 것, 그리고 감탄을 자아내는 것 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연구가 지향하는 목적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 아니고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과학자에게 예술가의 자유를 만끽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