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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것/▶ ◀

일국의 대통령이 10억 때문에


 우선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얘기를 쓰게 되어서 슬픕니다.
오늘 수업시간에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로 인하여 많은 얘기를 듣게 되었고
이것에 대해 꼭 써야겠다고 생각하여 컴퓨터를 켰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전 몹쓸 사람인양 방송에 한동안 출연하셨습니다.
이유는 포괄적 뇌물 수수죄였죠.
그런데 그 포괄적 뇌물 수수에 대해서 우리 다함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첫번째 상황입니다.
어떤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번해에 총장 선거에 나가신다고 해봅시다.
유인물도 만들어야 하고 하니 친구들이 돈을 조금씩 쥐어줬습니다.
자. 그럼 이제 이 교수님은 검찰 수사를 받습니다.
친구들은 하나하나 같이 조사를 받습니다.
친구들중 몇은 감옥에 갇힙니다.
또한 이 모든 사건의 전개가 나라 전체에 일거수 일투족 보도됩니다.
네.. 참 아찔합니다.

두번째 상황입니다.
이 교수님은 몇 달전 희한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비자금을 만든것이었습니다.
몇십년을 살아왔는데 부인이 딴 주머니를 차고 있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로 싸우게 되었으나
부인이 우리 가족을 위해 딴 주머니를 찬것이지 그것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 생각하여 금세 화해를 했습니다.

두번째 상황에서 얘기하고 싶은것은 부인이 돈 받은것을 꼭 알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 일을 모를수도 있으나 모른다고 주장하니 사람들은 삿대질을 하며 욕합니다.
(그걸 어떻게 모르냐.. 쯧쯧쯧......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세번째 상황입니다.
저는 아주 가난한 빚쟁이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저를 돕다가 빚쟁이가 될 판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아주 부자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저에게 희망이 보인다며 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
그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네.. 1인 운영체제인 그가 저를 불쌍한 거지인 빚쟁이인 저를 도와준다고 도와주다가 회사공금유용이라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네번째 상황입니다.
내 남편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인재입니다.
편모 가정에서 힘들게 큰 그가 하버드를 나와 드디어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는 현재는 콜롬비아 로스쿨 연구원입니다. 연봉은 수십만 불 입니다.
그런데 160만 불 짜리 집을 사게 되었습니다.
한화로 16억정도 하는데 25% 씩 초기 납입후 , 나눠 내기로 계약했습니다.
20년 모기지 계약이라고 하죠.
160만불이라고 하지만 42평 정도 입니다. 그래도 언제 돈을 나눠 갚을지 걱정입니다.


 저는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특히 저같은 또래의 어린 학생들이 읽어줬으면 합니다.
그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인간관계에 돈이 얽히면 안된다지만 친한친구 빚 갚으라고 돈으로 도와준거 가지고 전국에 일파만파 나쁜사람 취급되며 보도가 된다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두번째 이야기를 곁들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내가 너무 형편이 어려워 남편의 친구와 잘 아는 사이여서 남편 모르게 돈을 빌려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남편에게 알려진것은 둘째치고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그것도 대형죄인으로 남편에게 죄를 덮어 씌웁니다.
해명이란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세번째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강금원 씨라는 분입니다.
이것은 밑에 파란 박스를 읽어보심이 좋겠습니다. 덧붙여 연두색 박스도 이어지는 글입니다.
읽어보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사는 사람들에 직접 쓴 글입니다.

강금원이라는 사람

강회장이 구속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물어보았다.

“강 회장은 리스트 없어요?”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들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왜 주었어요?”
“사고치지 말라고 준 거지요.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 살 것 없으면 사고치기 쉽잖아요. 사고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도와준 거지요.”


할 말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의 수족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서 백수가 되었는데, 나는 아무 대책도 세워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기가 딱했든 모양이다. 강회장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도왔다.
그 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수가 없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강회장이 계속한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님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강 회장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이야기다.
“회사일은 괜찮겠어요?”
“아무 일도 없어요. 지난 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어요. 수시로 지시했어요.
그리고 모든 일을 변호사와 회계사의 자문을 받아서 처리했어요. 그리고 세무조사도 다 받았어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다시 덜컥 구속이 되어버렸다.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게 사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떻든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강 회장이 나를 찾아 온 것은 내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원금은 얼마까지 낼 수 있지요?” 전화로 물었다. “1년에 5천만 원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온 사람이 강 회장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꼽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 마디를 이렇게 사람 기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눈치 안보고 생각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장수천 사업에 발이 빠져서 돈을 둘러대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자연 강 회장에게 자주 손을 벌렸다. 당시 안희정씨가 그 심부름을 하면서 타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정치나 하지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구박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2000년 부산 선거에서 떨어졌고, 2002년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장수천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가 있었다.

강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퇴임이 다가오자 강 회장은 퇴임 후 사업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강회장의 생각에는 노무현이 중심에 있었고, 나의 생각에는 생태 마을이 중심에 있었다. 결국 생태마을 쪽을 먼저 하고 재단은 퇴임 후에 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게 해서 주식회사 봉화가 생겼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생각한 것은 공익적인 사업이었다.

70억이라고 하니 참 크게 보인다. 그런데 강 회장의 구상은 그보다 더 크다. “미국의 클린턴 재단은 몇 억 달러나 모았잖아요. 우리는 그 10분의 1이라도 해야지요.” 이것이 강 회장의 배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 꼭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강 회장 혼자서 부담을 해야 할 형편이다.

강 회장은 퇴임 후에 바로 재단을 설립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좀 천천히 하자고 했다. 강 회장 한사람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하고 모양도 좋지 않으니 출연할 사람들을 좀 더 모아서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퇴임 후 바로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종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고,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되니 아무 일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모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재단은 표류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 취직이라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봉하에 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봉하에 강 회장은 매주 하루 씩 다녀갔다.
그런 강회장이 구속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면목 없는 사람 노무현 (2009년 4월18일)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3082 아고라에 있는 청원의 일부입니다.

안희정입니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다 끝나가던 어느 날인가... 강금원 회장은 이렇게 독백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두고 봐라! 퇴임 후 대통령 옆에 누가 남아있는지 봐요... 아마 나 말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모두가 다 인간적 의리를 지킬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

저는 아무런 반론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달, 세상이 다시 강금원 회장에 대한 압수 수색으로 시끄러워 질 때였습니다. 강 회장의 친구 분들은 제게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안 최고. 우리도 안 최고 좋아하고 노무현 전대통령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아닌기라. 강금원이는 내 친구 아이가. 저 친구가 무슨 죄가 있노...” “솔직히 안소장이나 노 전대통령한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제 그만했으면(그만 도와주라는 뜻) 됐다 싶다. 저 친구가 대통령 도운 것 말고 잘못한 게 뭐가 있노.”

“아니 자기가 오너인 회사에서 세금 잘 내, 어디 빼돌린 돈 없어... 뭘 잘못했다고 허구헌날 이렇게 당해야 된다는 말인교...”

“솔직히 말해 골프장은 전국 골프장 중에서 납세실적 최고의 골프장이고 창신이니 뭐니 강회장 하는 회사가 강회장 1인 오너 회사인데, 무슨 횡령이고, 무슨 배임이란 말입니꺼.” “결국 이게 다 강회장이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 도와주다가 난 사단들이라 이겁니다.”

“...”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부산사람이 호남 민주당에 남아서 김대중 깃발 들고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다 떨어지고 떨어지던 그 노무현 의원에게 마음의 빚을 지었다고 말씀하시던 강 회장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의리 지킴이 그에게 끊임없는 시련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현실이 그저 괴로울 따름이었습니다.
지난 2003년 12월 대선자금 수사로 강금원 회장과 저는 감옥에 갔습니다. 첫 공판이 있던 2004년 1월 어느 날... 재판을 받기위한 피고인 대기실에서 저는 몇 달 만에 강금원 회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 그분은 난방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던 영등포 구치소에 수감되어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난방시설이 잘 되어있던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있던 것과는 대조적인 조처였습니다. 그는 중공군 솜누비옷 같았던 차림으로 포승에 묶인 채, 재판정 대기실에 나타났습니다.
그런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저 바라보며 눈물지어야만 했습니다. 미안해서 울었고, 고마워서 울었습니다.

무슨 특혜를 입은 것도 없고 대통령 후원자로서 감옥과 치도곤이만을 당해야 했던 그분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하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분에게 저는 물었습니다.

“회장님, 도대체 회장님은 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까. 무슨 덕을 바라고 그러신 것이라면 이제 임기도 끝나고 덕 볼 것도 없는데... 무슨 마음으로 의리를 지키십니까.”

저의 질문에 그분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호남사람으로서 부산에 건너와 사업했다. 부산이 나의 제2의 고향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호남에 대한 끝없는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려야 했다. 툭하면 사람들은 말했다. 호남 사람 의리 없다, 신용 없다고... 하지만 나는 보여줄 것이다. 호남 놈이 얼마나 신용 있고 의리 있는지... 부산 사람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줬던 호남에 대한 의리가 있었다면 나 또한 역시 호남 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싶다. 권력에 부나방처럼 달려들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도... 내가 대통령 옆에 있음으로서 호남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고쳐주고 싶다.”

“...”

대통령 만든 사람이라고 무슨 특혜를 받은 것도 없습니다. 사업이 늘었거나 돈을 더 벌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있던 회사도 줄이고 줄였고 해마다 정기 세무조사는 빼놓지 않고 다 받았습니다. 이미 세상에 대통령과의 관계가 알려진 만큼 더욱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런 특혜도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그였지만 모든 권력을 다 내려놓고 힘도 빽도 없는 전임 대통령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함께 해주시는 분은 결국 강회장이셨습니다. 미국처럼 대통령이 퇴임하면 대통령 기념관이나 도서관을 짓자고 말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고, 현직 대통령의 서슬 퍼런 위세에 기가 질려 발길을 끊고 있을 때, 그분만이 봉하마을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은 무슨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민주주의도 결국에는 사람의 의리와 바른 도리가 그 사회의 상식이 되고 국가의 법과 제도가 되는 세상일 것입니다. 책에 쓰여 있는 의리와 도리 따로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가 따로 있고, 지키는 놈만 손해 보는 법과 제도가 따로 있다면 그 세상은 민주주의 세상이 아닐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런 이득도 없이 지역주의 극복, 원칙과 상식의 세상을 향한 그의 신념이 현실에서는 늘 낙선과 시련이라는 대가로 돌아 왔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돌아오지 않는 그 행위를 반복하면서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우리는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저는 같은 논리로 강금원 회장님을 ‘바보 강금원’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풀어 주자..
이명박..
그리고 한나라당...
원하는 거 다이루지 않았는가..
그만
이제 그만 풀어 주자 그사람..
눈물이 난다..


네번째 상황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사위는 sk최태원 회장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는 한국타이어 조현범 부사장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사위는 평범한 변호사이고
열심히 공부해서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인재이며
집을 살 정도의 재력은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그는 콜롬비아 로스쿨 연구원이고 연봉이 꽤나 쎄기 때문이고요.
또 하나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에서 집을 살때에는 25%정도만 내니깐 한 4억 되겠네요.
한 나라의 대통령의 딸이 4억이 없어서 빌빌대는 게 더 이상한게 아닌가요?
대통령은 최고의 권력가인데 말이죠.

덧붙여서 수십년전 모모 대통령들은 그당시에 수천억을 빼돌렸었습니다.
그런데 현금 가치가 한참 하락한 이때에 대통령의 부인과 딸이 약 10억이 조금 넘는 돈을 받았습니다.
(노짱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언급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치 아주 큰 잘못을 저질른 사람처럼 모든 언론들은 그 집안을 싸그리 욕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노전 대통령이 모를리가 없다며 매도하며 믿어주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서내용 살펴보겠습니다.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해하지 마라.

이 내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숙제가 되야겠네요.


동감하시면 추천해 주세요.
댓글도 달아주세요.
제 의견 반박 댓글은 읽어는 보겠으나 답변은 마음속으로만 내리겠습니다.

ps.
첫째로 저는 정치에 아주 조금 관심이 있는 여대생입니다.
둘째로 저는 일단 객관적 위치에서 글을 서술하도록 노력은 했습니다.
셋째로 저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이야기를 서술 했습니다.
넷째로 저는 노사모 회원도 아니고 평상시에 정치인들은 사모한 적은 없으나 노무현이 우리 국민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것은 아주 어렴풋이 알고 있었습니다.